한국블록체인협회가 '선구자' 역할을 자처하며 가상통화 업계에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가상통화 공개(ICO) 및 거래소의 심사 가이드라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객관성'이 보장돼야 할 가이드라인이 협회의 이익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목소리가 높다. 심사위원인 협회가 협회 가입사를 평가하는 불공정한 잣대라는 얘기다. 이른바 셀프(self) 심사다.
◆ ICO 클럽 발족…스캠 심사 가이드라인 발표
지난 1일 한국블록체인협회는 회원사를 중심으로 한 ICO 클럽을 발족하고 스캠(사기코인) 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상통화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과 사기 프로젝트 구별을 목표로 잡았다.
협회는 '그동안 스타트업(벤처)들이 ICO를 할 때 공개하는 것은 백서(사업계획서)밖에 없다'며, '이 백서의 실현 가능성이나 사업성을 심사하는 기관을 지정하자'고 주장해 왔다. 심사기관으로 '협회나 민간기관'을 지정하자는 내용도 덧붙였다.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은 지난 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 블록체인–ABC Korea'에서 ICO 가이드라인 심사 주체에 대해 "한국블록체인협회 등 민간 단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족한 ICO 클럽이 바로 이 심사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클럽은 정기간담회를 통해 '스캠 프로젝트'를 구별하고 투자자에게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심사 가이드라인은 '요건을 갖춘 스타트업에 ICO를 통한 토큰 발행을 허용하고, 자격을 갖춘 거래소에는 신규계좌 발급을 재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 신원확인(KYC) 절차를 통해 투자자의 신원과 투자 목적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이런 절차를 거친 ICO 기업(발행자)은 유사수신행위 등 사후적 처벌을 받지 않게 했다. 매년 프로젝트 현황, 자금 사용내역, 재무제표 등에 대한 공시·감사 의무를 추가했다.
ICO 클럽은 발족 취지문을 통해 "앞으로 한국블록체인협회 가입사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ICO프로젝트에 클럽 가입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 ICO 클럽 구성원, 자격 논란…'선구자 코스프레?'
문제는 ICO가 스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ICO 클럽 구성원이 정작 '심사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ICO 클럽 창립 멤버는 에이치닥테크놀러지(에이치닥), 메디블록, 블록체인OS(보스코인), 글로스퍼(하이콘), 아이콘루프(아이콘)이다.
이들은 모두 ICO를 통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 운영자금을 조달했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또 자금 조달 이후 코인(토큰) 가격 폭락은 물론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에이치닥(Hdac)은 지난해 정대선 현대BS&C 사장이 스위스에 HDAC 테크놀로지를 설립하고 발행을 주도한 가상통화다. 비트코인 6000개 규모의 ICO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시장에서 '현대코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바 있다.
백서에 따르면 이 코인은 120억개가 발행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노드를 추적한 일부 투자자들은 메인넷 공개 전인 지난 5월 '더욱 많은 양의 코인이 채굴됐고 3300억원대 검은 돈이 증발했다'고 주장했다. 깃허브에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점도 구설수에 올랐다.
메디블록(MediBloc)은 활동 반경이 국내에만 머물러 있는 데다 원격 의료 기술이 국내 의료법상 '불법'이라는 지적이 거세 발행사 측에서 지난 5월 직접 해명을 거듭하는 사태까지 갔다.
같은 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ICO를 진행한 보스(Bos)코인은 '국내 1호 토종코인'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메인넷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다.
반면 글로스퍼와 아이콘루프는 각각 하이콘(Hycon)과 아이콘(Icon)의 메인넷을 론칭했다. 하지만 글로스퍼가 자체 개발해 지난 6월 메인넷을 발표한 하이콘의 경우, 메인넷 론칭 과정에서의 미숙한 운영과 시행착오로 투자자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이는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아이콘은 블록 트랜젝션이 1개 밖에 없다는 이유로 '깡통 블록' 논란에 빠졌다. 이어 지난 1월에 메인넷을 론칭했지만 소스코드 공개 없이 6개월 이상 운영했고, 메인넷 주소와 블록을 익스플로러로 공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관리자에게만 허용돼야 할 거래 중지와 거래 재개 같은 기능이 만인에게 허용되는 치명적 에러가 발견됐지만 '사소한 버그'라고 일축해 가상통화 시장에 실망감을 안겨줬다.
◆ ICO 심사는 '그들 만의 리그'…'토큰 사업가' 박영숙 교수 영입
ICO 클럽 회장은 아이콘 이경준 의장이 선출됐으며 발족식에는 협회 진대제 회장, 우태희 산업발전위원장, 김화준 부회장이 참석했다. ICO 가이드라인 구축 작업이 그들 만의 행사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물음표가 붙는 대목은 또 있다. 협회는 지난 7월 12일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지부 대표를 협회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박 대표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래예측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는데, 미국 토큰커머스재단의 아시아지사로 시작한 '토큰월드'의 부사장이기도 하다.
그의 주도로 스위치 토큰(Swytch Token)의 ICO가 커뮤니티에서 은밀하게 진행 중이다. 이 토큰은 지난 3월부터 ICO를 시작했고, 지난 5월 말 상장 예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있지만, 상장은 아직이다. ICO도 현재진행형이다.
◆ 자율규제심사, 평가 점수·등급 공개 안해…'회원사와 짜고 치는 고스톱'
협회가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민 사건이 불과 몇 개월 전에도 있었다. 지난 7월 11일 협회는 12개 거래소의 자율규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원 통과'다.
당시 심사 리스트에 오른 거래소는 빗썸, 업비트, 고팍스, OK코인코리아, 후오비코리아, 한빗코, 네오프레임, 코인제스트, 코인플러그, 한국디지털거래소(Dexko), 코빗, 코인원 등 12개사다.
장장 6개월에 걸친 심사 결과, 12개 거래소는 전원 통과 도장을 받았다. 평가 점수나 평가 등급 공개는 없었다. 협회는 이들 거래소가 보안의 기본적인 요건은 충족했다는 설명이다.
전하진 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은 "미리 제시된 최소한의 기준으로 엄격한 심사가 진행됐다"며 "심사 통과가 완벽한 보안이나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자 보호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충족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가상통화 시장에서는 "해킹 사태를 무마하고 신규계좌를 발급하려고 협회와 회원사가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협회의 VIP 고객인 빗썸은 지난달 20일 190억원대 해킹으로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고, 업비트는 이달 초에 이어 지난 9일 해킹설에 휘말렸다. 협회가 자율규제 심사 결과를 발표한 당일에 업비트의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거래소의 보안사고는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코인레일이 400억대 해킹을 당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야피존이 55억원 상당의 해킹 피해를 봤고 12월에는 야피존이 사명을 바꾼 유빗이 재차 해킹으로 172억원 상당의 피해를 내기도 했다. 가상통화 시장에서는 1년새 해킹으로 1000억원이 증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가 '자율규제' 심사를 한다며 6개월을 소요했지만 결과물만 봤을 때 어떤 거래소가 안전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협회가 협회 회원사인 거래소에 면죄부를 준 모양새다.
◆ 서류 심사, 거래소 직원 인터뷰로 심사 끝?
'전문가도 잘 모른다'는 보안 점검을 서류 심사와 거래소 직원 인터뷰로 대신한 것만 봐도 심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회는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일반 부문, 보안성 부문을 구분해 지난해 5월부터 한 달 동안 심사를 진행해 왔다.
이 심사는 1차적으로 지난 5월 1일 12개 회원사가 제출한 서면 심사자료를 검토하는 수준에서 진행됐다. 이 심사는 일반 심사와 보안성 심사, 투 트랙으로 진행됐다.
이후 서류 보완 요청을 거쳐 다시 제출한 심사자료를 근거로 같은 달 30일 자율규제 위원들이 각 회원사의 실무 책임자 및 임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반심사에서는 재무정보, 거래소 이용자에 대한 기본 정보 및 투자 정보 제공, 민원관리 시스템, 이용자 자산 보호, 거래소 윤리, 자금세탁방지 등 항목을 다뤘다.
세부적으로는 자기자본 20억원 이상, 보유자산의 관리방법 및 공지 여부, 코인 상장절차, 민원관리 시스템, 콜드월렛 70% 이상 보유, 시세조종금지 등 총 28개 심사항목을 검토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12개 거래소에 28개의 항목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 달"이라며 "서류 심사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오라고 지시한 후 거래소 관계자를 인터뷰 하는 방식으로 보안 구멍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출처 : 데일리토큰(
http://www.dailytoke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