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를 신청한 암호화폐 채굴 기업 비트메인(Bitmain)의 각종 실적에 관해 많은 언론이 기사를 썼다. 암호화폐 채굴 분야는 물론이고, 암호화폐 업계 전체로 보더라도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업계 최대 업체의 상장을 향한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했다.
비트메인의 상장이 암호화폐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암호화폐는 이제 주요 주식 시장에 상장된 공개기업의 자산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어엿한 자산이 된다.
어떤 기업의 주식을 (투자 목적으로) 사고팔 때 기업의 재무제표나 경영 지표, 기업이 속한 분야의 장기적인 전망 등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비트메인의 주식을 사고팔 때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고려해야 할 사안이 기존의 기업들과 조금 다르기는 할 텐데, 당장 자산 가운데 암호화폐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간단치 않은 고려 사항이 몇 가지 더 있다.
그저 비트코인 시세를 반영하면 될까?비트메인의 전체 자산 가운데 보유한 암호화폐가 28%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비트메인은 상장되는 순간 암호화폐 펀드 회사로 분류될까? 그렇지는 않다. 암호화폐 시장이 비트메인 사업의 성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지만, 비트메인의 자산 가운데는 여전히 공장형 채굴 시설 등 유형 자산이나 금융 자산 등 종류가 엄연히 다른 자산도 있고, 각 자산에 따르는 위험도 물론 다를 것이다.
게다가 비트메인의 자산에 포함된 암호화폐의 가치는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된 것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변해도 실시간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상승장이 이어진다고 비트메인의 재무제표가 당장 좋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채굴 장비 판매 실적도 좋아지고 암호화폐를 팔아 올리는 수익도 높아질 테니 회사에 어떻게든 득이 되긴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가격이 내려가도 회사의 가치가 덩달아 곧바로 낮아지지는 않는다. 비트메인은 상장 신청서에서 이 점을 언급했다.
“장부상의 암호화폐 가격을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판단이 설 때만 손실액을 반영해 자산의 가치를 다시 평가한다.”
상장 신청서에 가중평균비용(weighted average of cost) 방식을 이용해 계산한다고 적혀있기는 했지만, 장부상의 가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산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2017년 하반기 비트메인 재무제표에 적힌 암호화폐 자산의 가치는 무려 7억 달러가 넘는다. 암호화폐 시장의 변화를 감안하면 암호화폐 자산의 현재 가치는 7억 달러보다는 낮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비트메인은 전체 자산 가치가 1억 달러 준 것으로 재무제표에 기록했는데, 보유한 암호화폐 대부분이 채굴로 얻은 비트코인캐시인 점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손실액이 크지 않다.
또한, 올해 내내 암호화폐 시장이 대체로 고전을 면치 못했음에도 비트메인이 상반기에만 암호화폐를 팔아 1억 8천만 달러 이윤을 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러므로 암호화폐 시장의 영향을 받기는 해도 비트메인은 암호화폐만 관리하고 투자하는 자산 운용사와는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뿐 아니라 사업 운영 과정이나 재무 관리에서의 실수나 이윤 감소, 공급 업체 과잉으로 인한 경쟁, 기술 개발에서 뒤쳐질 우려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보안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비트메인은 무려 2,700만 달러어치 암호화폐를 도난당했다. 상장 신청서 초안에는 비트메인이 암호화폐 자산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지에 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새로운 유형그렇다면 비트메인을 어떤 기업으로 분류해야 할까? (암호화폐 채굴기를 만들어 파니) 제조업체? (디지털 자산도 엄연한 자산이니 광업에 속하는) 채굴 업체로? 사실 암호화폐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금융 산업의 기존 분류법으로는 암호화폐를 도저히 명확히 규정할 수 없던 것처럼 비트메인도 기존 분류 가운데는 꼭 맞는 옷을 찾기 어렵다.
비트메인은 유형 자산(채굴기)을 만들어 판다. 암호화폐를 채굴하니 가상의 자산도 생산하고, 채굴기와 채굴 방법을 하나의 서비스로 묶어 기업 고객에게 팔기도 한다. 그리고 보유한 자산의 특성상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기류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비트메인의 상장 신청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우리 사업 실적과 재정 상황은 시장의 암호화폐 가격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될 비트메인 주식 가격은 비트코인이나 비트코인캐시 가격과 함께 움직이게 될까?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 비트메인이 공개기업이 되면 단지 새로운 유형의 암호화폐 투자 방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례 없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이 생겨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투자 가치새로운 유형의 기업이라면 투자 가치는 어떻게 분석하고 도출해야 할까?
먼저 비트메인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 눈부신 속도로 매출과 수익을 늘렸고, 암호화폐 채굴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접목한 채굴용 반도체 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채굴 시설도 전 세계 곳곳으로 확장하고 있다. 적어도 소위 잘 나가는 기업으로 꼽기에 손색없는 실적은 충분하다.
그러나 비트메인의 투자 가치가 높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투자 가치는 시장 전망, 비트메인의 경영 능력과 위험 관리 능력에 대한 투자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며, 당연하지만 공모가(IPO price)를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의 펀더멘털도 물론 중요하지만, 투자자가 여러 가지 지표를 토대로 매긴 기업의 주관적인 가치가 실제 투자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Oaktree Capital Management)의 호워드 마크스는 이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 기업이 어떠냐보다도 투자자가 가치를 얼마로 매기고 얼마를 주고 사느냐의 문제다.”
업계의 선두주자인 비트메인이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채굴 업체들의 기업공개가 뒤따를 예정이라는 점도 호재다. 이미 또 다른 채굴업체 카난 크리에이티브(Canaan Creative)와 에방(Ebang)이 기업공개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기업의 경영 실적과 재무제표를 보면 암호화폐 채굴 분야를 더욱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채굴 업체들 외에도 암호화폐 분야 곳곳에서 기업공개를 신청하는 업체들이 나올 것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암호화폐 관련 투자처로 고를 선택지가 훨씬 넓어지는 셈이며, 투자자뿐 아니라 기업 애널리스트, 투자은행가, 변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암호화폐 관련 기업을 들여다볼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 전문가들이 암호화폐 기업을 취급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곧 암호화폐가 기존 시스템의 대안으로써는 가치를 잃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암호화폐와 기존 금융 시스템이 거리를 좁히고 암호화폐가 어엿한 자산이자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인정받고 거듭나는 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도 없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비트메인 상장 절차를 거치며 투자자와 기업가들이 암호화폐 시장과 사업 전반에 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리라는 점이다. 한 업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돼 참여자와 투자자들이 모두 이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곧 업계의 전반적인 인프라가 탄탄해 훨씬 다양한 투자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암호화폐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든 비트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채굴 업계는 궁극적으로 이를 발판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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